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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추천 /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썸머였다, 이마치

삶은브랜드/책

by 진소장 2019. 5. 27.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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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의 세상. 아주 작은 독립서점 이름이다. 사당에 있다. 회사 일이 일찍 끝날 것같은 예감이 드는 시간이었다. 요즘 꽤나 시간 여유가 많아 이것저것 생각도 많이 한다. 4호선에 걸쳐있는 회사, 사당역 근처에는 독립서점이 없을까 하고 검색해봤다. 보통 독립서점은 홍대, 이태원을 필두로 많이 포진해있다. 기대는 없었지만 아주 괜찮은 서점을 발견한 것 같다. 오픈시간도 따로 없다. 네이버 지도에 나와있는 안내멘트가 마음에 든다.

 

 

"인스타로 오픈 시간 확인"

 

 

  왜 이런 불친절함이 좋은건지. 인스타를 뒤져 팔로잉을 하고 그곳에 도착했다. 5개 세상 속 5가지 이야기. 지금의 세상에는 5개의 분류로 분류별 5개의 책을 소개한다. 오직 25권의 책만 판다. 협소한 큐레이팅. 이런게 좋다. 복세편살. 이미 주인장님으로부터 검증받은 책일 것이다. 아주 작은 가게지만 단단한 콘텐츠로 가득차 있다는 느낌이 든다. 왠지 모를 이야기가 느껴지는 공간들. 만약에 공간을 만들게 되면 이런 느낌이 방문자들에게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썸머였다"

 

 

  문장으로 만들어진 책 제목. 작가의 의도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문장 제목에 마침표가 없다는 점이 좋다. 누군가의 썸머였고 아직도 썸머가 될 가능성이 열어둔 느낌이다. 소소한 에세이. 일기에 가까운. 제목의 썸머는 영화 500일에 썸머를 지칭하는게 맞다. 137장의 아주 얇은 책.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후룩룩 들이킬 수 있는 책. 누군가의 사랑 감정을 힐끗 엿볼 수 있었다. 사랑에서 흘러나온 찌질함들에서 픽하고 실소가 나오는 내용이 많다. 그런 와중에 내 속에도 이런 감정이 남아있을까 하고 스스로를 보게 된다. 작가는 책을 쓰면서 감정을 다시 찾으려 했을까 아니면 멍청했던 감정들을 버리려 했을까.

 

 

"열여섯 살의 내가 아직 내 안에 살아 있지 않을까."

 

 

  나도 아직 저렇게 만날 수 있을까. 뜨겁지만 뜨거움의 원천을 알지 못한 채. 어떤 감정인지 모르지만 그 감정이 사랑이라 스스로를 중독시키는 그런 마음으로. 그런 마음의 마지막이 언제였는지 아름아름 더듬어 본다. 사진첩을 뒤지듯 과거의 장면들이 머리 속을 휘집는다. 찬 새벽 공기가 옷 틈 사이로 흐물흐물 새어 들어오는 시간. 조금만 있다가자, 30분만 더 같이 있자. 그렇게 12시가 넘고 2시가 되어도 떨어지기 싫은 애틋함이 향기처럼 온 몸을 감싸던 때. 그런 회상이 이제는 더이상 세포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읽는 내내 문득 문득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이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별은 익숙해질 수 없는 유형의 결과물이다. 이별의 순간을 생각해보면 아프고 따갑지만 시간이 지나면 아물고 원래로 돌아온다. 이별은 헤어지는 순간이나 후보다 이별 전이 더 슬프다는 생각을 한다. 이별 자체의 슬픔보다 이별을 예상하는 마음이 가장 슬프지 않을까. 이별이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할 때 아무것도 할 수 없거나 회복 불가능한 관계를 느낄 때 무기력함. 뭐든 하고 싶지만 뭘 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할 때. 이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문장은 왠지 모르게 축축해보인다.

 

 

"너는 그날 집으로 돌아가 무슨 생각을 했니?

나는 늘 내가 썸머라고 생각했는데, 봐봐, 내가 톰이었던 거지?"

 

 

 

 

   

  연인의 사랑 크기를 저울에 올린다면 어떤 쪽으로 기울어질까. 아무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는다가 내 답변이다. 보이지 않은 사랑의 무게를 잰다는 것 자체에 오류가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무게는 언제나 0g. 이렇게 생각하는게 가장 현명하지 않을까. 어느 쪽이 무거운지 계속 재다보면 어느새 사랑보다 불신이 더 커진다. 어쩌면 사랑은 쌍방향이라 하지만 일방향으로 흐르는 강물같다는 생각이 든다. 끝없이 흘려보낼뿐 돌아오기를 기다리면 결국 지치는 건 스스로다. 나는 썸머였을까. 톰이 였을까. 사랑도 너무 진지말고 그냥 가볍게 주는건 어떨까. 아무 생각없이 툭하고. 야, 오다 주웠어.

 

 

 

'미동도 없는 속눈썹에 살짝 손끝을 대보고 싶던 3년 전 겨울.'

'그쪽은 햇볕이니 이쪽으로 와서 말해. 이런 종류의 다정함.'

 

 

 

 

 

  이런 것들이 사랑일까. 볼 표면만 보고 있어도 따뜻하고 부드러워서 아주 살짝만 손 끝을 대보고 싶은. 다른 사람에게 했던 모든 각각의 다정함을 어떤 사람에게 모두 한번에 쏟아 붓는 그런 것들. 책을 덮고 다시 생각해본다. 사랑을 가슴에서 꺼내어 어떤 모양인지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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